그 어느 때보다도 새로운 경영기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애자일’은 최근에 개발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올 한 해 동안 뉴스 기사, 책, 강연 주제로 자주 등장하였다. 그 뿐만이 아니다. OKR과 같은 단일 기법에서부터 홀라크라시와 같은 큰 조직운영 체계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적으로 보다 효과적인 경영 기법을 찾기 위한 시도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2007년에 창립된 코넥스솔루션은 탐스(TOMS), 빅토리아(VICTORIA)를 포함하여 여러 해외 브랜드를 수입, 유통하는 업체이다. 코넥스솔루션은 자율조직을 구축하기 위해 2015년(직원수: 160명)에 홀라크라시를 도입, 운영하다가 2017년에 이를 중단하였다. 코넥스솔루션의 강원식 대표는 “보다 체계적으로 수평조직을 운영하기 위해 홀라크라시를 채택”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왜 3년만에 홀라크라시를 폐기하게 되었을까? 지난 26일 강원식 대표를 만나 직접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코넥스솔루션의 홀라크라시 도전기를 통해 새로운 경영기법을 도입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해외 브랜드 수입, 유통 업체인 코넥스솔루션은 3년간 홀라크라시를 운영하다 철회하였다]
코넥스솔루션 홈페이지에 소개된 핵심가치를 보면 ‘자율성’, ‘정보공유’, ‘상호존중’을 강조한 부분이 눈에 띤다. 홀라크라시를 도입하기 전부터 수평조직에 관심이 있었던 것인가?
“수평조직에 관심이 있었다기 보다는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수평조직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개인이, 대표가 아무리 천재라도 집단지성을 능가할 수 없다. 대표가 천재라서 마이크로 매니징을 해주더라도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다. 어느 규모까지는 대표가 대응할 수 있겠지만 모든 것을 대표가 다 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담당자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최고이고, 그들이 잘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외부 환경은 빠르게 변하는데 내부에 위계를 두고 업무를 진행하면 대응 속도가 느리고 반응을 빠르게 할 수 없다. 모든 구성원들이 시장 요구에 즉각즉각 대응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수평조직인 것 같다.”
홀라크라시를 도입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회사가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기존 조직들이 많이 채택하고 있는 영업부, 마케팅, 디자인, 물류 등 기능 중심으로 조직을 구축하였다. 그런데 한 1년 해보니까 경영서에서나 보던 사일로 현상이 나타났다. 예를 들면, 영업팀이 마케팅팀에 “백화점에서 이런일을 해달라고 한다” 라고 협업을 요청하면 마케팅에서는 “우리 브랜드 이미지랑 안맞는다. 안하겠다”라고 해서 싸움이 나고, 마케팅이 디자인팀에 요청한 업무에 대해 “내가 요청한 디자인은 이런게 아니야, 우리 브랜드 이미지랑 안맞아”라고 하면 디자인팀은 “내가 생각한 브랜드 이미지는 이게 맞는데 무슨 소리 하는거야”라고 하면서 싸우는 것이 다반사였다.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일을 하는건데, 왜 이렇게 부서들끼리 싸우나? 왜 그럴까?’를 고민하던 와중에 닐스 플래깅이 쓴 ‘언리더십’을 읽고, “아 이거구나. 왜 바보처럼 사일로를 만들었을까?” 라고 후회하였다. 그 후 책에서 배운대로 기능조직을 셀조적으로 전환하였다. 셀조직으로 조직구조를 전환하였을 때 직원들의 반발이 심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부서 이기주의도 줄고, 기능조직보다는 셀조직이 일이 훨씬 잘 돌어간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런데 책이 실용서가 아닌 개념서이다 보니 책을 기반으로 조직 체계, 제도를 만들어 가는데에 어려움을 느꼈다. 그러던 찰나 홀라크라시를 알게 되었다. 조직설계에 영향을 받은 ‘언리더십’, ‘BB 경영’ 과 같은 책들은 개념은 좋지만 구체적인 실천방법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홀라크라시는 구체적인 실천 방식이 제시되어 있어서 이것을 채택하면 수평조직을 보다 체계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들었고, “해볼만 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홀라크라시를 도입한 자포스의 영향도 있었다. 평소 자포스의 조직문화와 우리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이 비슷하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자포스가 홀라크라시를 도입하게 된 배경에는 우리 회사와 비슷한 고민에서 결정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작용했다.”
[코넥스솔루션 강원식 대표]
홀라크라시를 도입하기 전까지 준비기간을 거쳤나?
“도입 전에는 3~4개월 정도 책으로 공부하면서 준비했다. 짧은 준비 기간을 거친 후 일단 도입하여 구성원들을 지속적으로 교육도 시키고, 관련 서적도 읽으면서 안착시키려는 노력을 했다. 그런데 구성원들의 참여가 점점 떨어졌고, 홀라크라시에 대해서 강하게 저항하는 구성원들이 생겨났다.”
구성원들이 저항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홀라크라시가 오히려 일을 못하게 한다는 입장이었다. “기존의 조직 구조에서 구성원들이 스스로 알아서 잘 하고 있었는데 왜 홀라크라시를 도입해서 이런 혼란을 가져오느냐?”라는 피드백이 가장 많았다. 구성원들 입장에서는 기존 조직구조에서는 대표에게 바로 승인받고 일을 처리할 수 있었는데, 홀라크라시를 도입한 후에는 자신이 의사결정하고 그에 뒤따르는 책임감을 부담스러워 했던 것 같다. 구성원들은 “그냥 대표님이 정해주시면 안돼요?”라고 요구했었다. 더불어 새로운 방식에 대한 혼란스러움과 익숙하지 않은 것을 배우는 과정도 직원들에게 힘들었던 것 같다. 단순히 변화 자체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홀라크라시를 도입한 이후의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나?
“홀라크라시의 제도 자체가 배우기 어려웠다. 쉽게 이야기하면 어느날 갑자기 법 자체가 바뀌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지구인이 갑자기 다른 행성에 떨어져서 그 행성의 법을 따라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기존에 해오던 업무 방식이 있는데 모든 것을 새롭게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봐라. 용어에서부터 운영 방식까지 모든 것이 생소하기 때문에 혼란이 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정착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구성원들은 그 과정이 힘들고, 귀찮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기존 방식으로 되돌아가는 경우가 반복되었다. 특히 우리는 홀라크라시를 체득해서 도입한 것이 아니라 책을 연구해서 시도한 것이었기 때문에 어려움을 더 컸던 것 같다.
다른 어려움은 회의 방식이다. 홀라크라시의 의사결정 프로세스에는 반론 단계가 있다. 어떤 안건이 팀, 회사에 해를 끼친다(예: 프로모션 제안에 대해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반대 의견을 제시)고 생각되면 반대 의견과 이유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하나의 안건이 가져올 수 있는 위협을 사전에 파악하여 보다 통합된 안건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반대’라는 단어 자체에 대한 반감이 크다보니 반론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반론을 통해 논쟁을 해야 하는데 감정적인 싸움이 일어난다. 반론 단계가 핵심 포인트인데, 서로 감정을 다치지 않고 건설적 비판을 하는 것을 정규 교육을 통해 배운 적도 없고 충분히 훈련이 안되어 있기 때문에 잘 안된다. 회의에서 반대 의견이 나오면 사기가 꺾인다거나 감정적으로 상처를 입는 경우가 많았고, “그럼 하지 말죠”라며 자신의 제안을 철회하는 경우가 많았다.”
홀라크라시를 도입하고 얻은 혜택은 없었는가? 출연했던 팟캐스트에서는 일부 직원들이 보다 주도적으로 변했다고 했는데 홀라크라시로 인한 직원들의 행동 변화는 없었는가?
“실질적으로 홀라크라시의 제도적 장점을 느낀 사람은 소수였던 것 같다. 대다수는 팔로우십이 높은 구성원들이 “한 번 해보자”라는 자세로 따라왔었다. 제도나 그 이점을 완벽하게 이해한 구성원들의 비율은 적었던 듯 하다. 홀라크라시의 장점을 느끼기 위해서는 결국 이것이 매출이나 시장 점유율로 이어져야 한다. 그래야 “이것봐. 도입하니까 더 잘 되잖아”라고 느끼게 되는데, 그런 결과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홀라크라시의 이점이 어느 누구에게도 입증되지 못했던 것 같다.”
홀라크라시를 도입할 때 ‘이렇게 했다면 구성원들의 저항이 덜 했을 텐데’라고 생각되는 것이 있나?
“홀라크라시의 창시자인 브라이언 로버트슨은 홀라크라시를 빅뱅 방식(한 번에 모든 제도를 변화시키는)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우리는 한 번에 도입하는 방식을 따랐다. 하지만 빅뱅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준비하고, 점진적으로 도입해야 했던 것 같다. 실제로 소시오크라시(홀라크라시의 원류)에서는 점진적 도입, 변화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앞으로 새로운 경영기법을 도입한다면 어떤 단계로 도입하고 싶은가?
“철학이나 개념적인 접근이 아니라 사소하지만 기초적이고 구체적인 것부터 시작할 것 같다. 예를 들면, 우아한 형제들의 ‘송파구에서 일을 더 잘하는 11가지 방법’을 보면 철학이 아니라 행동팁들이 제시되어 있다. ‘간단한 보고는 상급자가 하급자 자리로 가서 이야기 나눈다’, ‘휴가나 퇴근시 눈치주는 농담을 하지 않는다’ 등 이런 것들이 수평적 문화를 이끌어 내는 구체적인 행동팁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사소한 것부터 (변화를) 쌓아 나가야 문화가 형성되지, 갑자기 “이런게 수평이야”라고 거창하게 철학을 들이밀면 변화나 조직문화 형성이 어려운 것 같다.
돌이켜보면, 걸음마도 못 뗀 상태에서 철인 3종 경기를 뛰는 격이었던 것 같다. 지금 그 때로 돌아간다면 서두르지 않고 새로운 제도를 운영하기 위한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져나갈 것 같다. 이를테면, 보다 건설적인 논쟁, 회의 진행을 위해 ‘서로 잘 반대하기’, ‘의견듣기’, ‘감정 다스리기’를 먼저 가르칠 것 같다. 레이 달리오가 쓴 책 ‘원칙’을 보면 2분 동안 상대방 말을 안끊는 ‘2분 규칙’이 나오는데, 그런 규칙처럼 사소한 리추얼을 쌓아 나가는 것부터 시작할 것 같다. 우리는 너무 성급했었다. 홀라크라시를 도입하면 1년 안에 안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안착을 위해서는 도입 자체가 중요한게 아니라 홀라크라시를 운영할 수 있는 기본 자질부터 갖추어 나가는게 필요한 것 같다.”
새로운 경영기법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조언이 있다면 무엇인가?
“개념적으로 접근하거나 어떤 기법이 멋있어 보여서 채택하지 않았으면 한다. 기법을 고민할 때 ‘우리 회사를 잘 돌아가게 하는 기법은 무엇인가?’를 따지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만약 위계적인 구조에서 성과가 잘 난다면 그것이 좋은 기법인 것이다. 어느 기법이 특정 조직에 맞고, 안맞을 수 있는 것이지 ‘무엇이 더 우수하다’ 식의 상위, 하위 개념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수평조직이 반드시 답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가 실수했던 것은 조직의 발달 단계 무시하고, 갑자기 몇 단계를 건너 뛰어 자기경영 단계로 도달하려 한 것이다. “우리는 수평적인 조직이니까 잘 될거야”라는 기대만 가지고, 자기경영을 할 기본적인 인프라나 바탕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것을 시행하려고 하니 잘 안된 것이다. 지금 다시 홀라크라시를 한다면 제가 먼저 한 1년 정도 퍼실리테이션을 배우고, 내부 퍼실리테이션을 육성하여 잘 정착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해 나갈 것 같다.”
코넥스솔루션의 사례는 이례적이지 않다. 하나의 경영기법이 주목을 받으면 많은 기업들이 벤치마킹을 하지만 대상 기업의 성과를 그대로 얻는 경우는 드물다. 경영학자인 줄리언 버킨쇼에 따르면, GE의 워크아웃, 구글의 20% 혁신 시간을 포함하여 “브랜드화된 경영 아이디어 100가지를 조사해보니 열에 아홉은 10년 안에 인기를 잃었다”고 한다. 경영 기법 자체에 거품이 있을 수 있고, 원기업과 다른 내외부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원기업의 방식 그대로 모방하여 실패로 이어질 수도 있다. 버킨쇼는 이러한 실패를 줄이기 위해서는 경영모델, 사고방식이 유사한 기업의 우수 사례를 모방하거나, 우수 기업, 사례의 핵심 원리를 분석하여 자신의 조직 상황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패 자체는 쓰지만, 제품 혁신이 실패에서 배운 학습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경영 기법의 도입 실패 경험은 더 좋은 조직을 설계하는 데에 밑거름이 된다. “우리는 수평적인 조직이니까 잘 될거야라는 기대만 가지고, 자기경영을 할 기본적인 인프라나 바탕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것을 시행하려고 하니 잘 안된 것”, “철학이나 개념적인 접근이 아니라 사소하지만 기초적이고 구체적인 것부터 시작할 것”이라는 강원식 대표의 응답에서도 느껴지듯이 실패 경험은 현 조직에 대한 새로운 깨우침과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한 통찰과 아이디어를 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