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 그룹(이하 레고)은 1932년에 설립된 덴마크의 장난감 제조 업체이다. 레고의 2018년 매출은 약 6조 3천만원으로 이는 2017년보다 4% 증가한 수치이다. 레고의 브랜드 가치는 약 8조 6천억원으로 장난감 브랜드 중 1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2위 업체인 반다이 남코(약 1조원)를 큰 차이로 따돌리고 있다.
장난감 브랜드 가치 1위를 유지하고 있다고해서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레고는 불확실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2017년 애자일 전환을 단행하였다. 애자일 전환은 두 개의 디지털 부서에 적용되었는데, 두 부서의 구성원 수는 500명 이상으로 비교적 큰 규모로 진행되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1년이 지난 후 성과를 측정해본 결과, 구성원의 만족과 동기 수준이 향상되고, 변화에 대응하는 시간도 대폭 단축되었다고 한다. 비록 도입한지 1년밖에 되지 않아 그 효과를 단정할 수 없지만, 많은 기업들이 도입 초기부터 진통을 겪는 것을 비추어보면 레고의 사례는 고무적이다. 레고는 어떻게 애자일 전환을 순항시킬 수 있었을까?
애자일은 방법론이 아니라 마인드셋이다
레고가 애자일 전환에서 주력한 것은 단순히 방법론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에 애자일 가치와 원리를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레고는 애자일을 도입하고 적용하는 전 과정에서 애자일 선언문(Agile Manifesto)에 제시된 원칙을 충실히 이행하려고 노력하였다. 그 한 예가 조직변화를 하향식(top-down)으로 접근하지 않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조직변화는 리더를 중심으로 한 하향식 접근을 많이 채택한다. 하지만 레고는 이러한 “하향식 접근은 구성원에게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지시하는 것으로, 팀이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권한을 위임하는 애자일 원칙을 거스리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조직원들이 변화 전략 수립과 실행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오픈 소스 변화(open source change)’ 방식을 채택하였다.
오픈소스 변화
오픈소스는 소프트웨어의 소스 코드를 공개하여 누구나 이를 활용하여 2차 가공물을 생성, 수정, 배포할 수 있는 것을 일컫는다. 오픈소스는 소통과 참여가 핵심으로 소스를 공개함으로써 다양한 관점과 전문성이 활용되고, 지속적인 개선, 업데이트가 이루어지는 것이 장점이다.
오픈소스 변화는 오픈소스에 영향받은 변화 접근 방식으로 구성원을 조직변화 준비와 과정에 참여시키는 것이 특징이다. 기존에 많이 사용되는 하향식 접근에서는 리더가 조직변화에 대한 전략, 비전, 실행 계획을 수립하고, 구성원에게 변화의 필요성과 이점을 설득한다.
반면, 오픈소스 변화 방식에서는 구성원들이 변화 전략 수립, 실행 계획에 참여하며, 리더에게 일방향으로 변화에 대한 방향과 방법을 듣는 것이 아니라 다방향으로 소통하는 데에 초점을 둔다. 경영 컨설팅 업체 CEB에 따르면, 오픈소스 변화로 조직변화를 추진하는 경우 그 성공률이 24% 증가하며, 실행에 드는 시간은 3분의 1로 줄어든다고 한다.
조직변화에 대한 접근 방식으로 오프소스 변화를 채택한 레고는 리더와 구성원이 함께 변화 전략을 수립하고, 구성원들이 스스로 자신의 변화 실행계획을 작성하게 하였다. 변화에 대한 소통에 있어서도 리더가 변화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변화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서로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집중하였다.
애자일 전환 프레임워크
애자일 전환은 아직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아 참고할만한 모델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레고에서는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데럴 릭비, 제프 서덜랜드, 앤디 노블이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발표한 Agile at scale로부터 애자일 전환에 필요한 다섯 가지 변화, 즉 조직 구조, 권한, 예산 프로세스, 성과 측정, 배포 프로세스를 도출하여 활용하였다. 다시 말하면, 애자일 전환을 이루기 위해 조직을 팀 중심으로 구축하고, 팀에 권한을 위임하며, 벤처 캐피탈 방식으로 프로젝트 진척에 따라 필요한 예산을 할당하는 예산 프로세스로 바꾸었다. 그리고 성과측정은 팀, 제품, 가치 측정에 기반하고, 배포 프로세스는 반복(iterations)을 통한 지속적 배포로 전환하였다.
[출처: Anita Friis Sommer(2019). Agile Transformation at LEGO Group. Journal Research-Technology Management]
애자일 전환 준비
레고의 애자일 전환은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두고 진행되었다. 애자일 전환은 2018년 1월에 예정되어 있었지만, 레고는 2017년 8월에 애자일 전환 계획을 발표하여 구성원들이 방향을 이해하고, 전환을 준비할 수 있게 하였다. 10월에는 팀 중심의 새로운 조직도가 공유되었으며, 11월에는 전세계에서 근무하고 있는 70여명의 리더를 본사로 불러 애자일 워크숍을 진행하였다. 워크숍에서는 스크럼을 시뮬레이션함으로써 운영 방식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애자일 전환에 대한 경험과 지식, 궁금증, 우려를 나눌 수 있게 하였다.
3명으로 구성된 애자일 전환팀은 변화의 전 과정을 계획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들은 팀들이 성공적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애자일 전환의 전 과정을 안내하고,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였다. 동시에 애자일 전환 대상이 아닌 부서와 소통하고 변화를 장려하는 것 또한 중요하게 다루었다. 왜냐하면 애자일 전환을 지켜보면서 다른 부서도 영향을 받았으며, 디지털 분서가 애자일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다른 부서의 운영 구조나 프로세스를 바꿀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팀에게 변화를 수용하고 주도할 수 있는 권한을 주어라
레고는 변화를 강제하지 않고, 애자일이 실행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애자일 전환은 애자일 방법론이 아니라 그 철학과 원리를 도입하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정 방법론(예: 스크럼, 칸반)이나 업무 도구(예:지라, 엑셀), 업무 프로세스를 강제하지 않았다. 대신 구성원들이 서로 소통하고, 코칭, 교육과 같은 지원을 통해 스스로 자신에게 잘 맞는 방법론이나 방식을 찾고 진화시켜 나가기를 바랐다.
이러한 방향 하에서 구성원들은 사내 SNS나 스크럼 마스터와 프로덕트 오너들의 모임, 격주 미팅을 통해 애자일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였다. 회사에서는 애자일 기본 훈련, 스크럼 마스터 훈련, 프로덕스 오너 훈련, 애자일 리더십 훈련, 애자일 코치 훈련 등을 제공하고, 코치를 통해 애자일 운영 방식에 대한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하였다.
애자일 전환에 대한 긍정적 신호들
애자일 전환이 시작된지 1년을 넘긴 시점부터 긍정적인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매년 실시하는 내부 조사 결과, 디지털 부서의 만족도와 동기 수준이 월등히 향상되었다고 한다. 디지털 부서의 대응 속도 또한 빨라졌다. 예를 들면, 개발에 8,000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 재정 상품(finance product)이 있었는데, 4주(스프린트 2회) 만에 MVP를 선보였다고 한다.
*MVP(Minimum Viable Product)
원하는 제품, 사업의 타당성을 확인하는 데에 필요한 핵심 기능만 구현한 제품을 의미한다. 불완전하더라도 제품의 핵심적인 기능만 개발하여 피드백(고객 반응)을 얻어 이후 개발 방향을 개선, 수정하는 것과 같이 점진적으로 개발해 나가는 방식이다. (관련 기사: 린스타트업)
물론 이런 긍정적인 결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 팀들은 애자일을 적용하는 데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들은 적절한 팀 구성에 애를 먹거나, 여러 애자일 방법론을 시도하였지만 애자일이 불필요하거나 오히려 업무를 제한시킨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애자일 적용에 어려움을 겪는 한 팀은 고객 범위가 넓어 구성원들이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팀으로 일하기 보다는 각자 고객을 맡아서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백로그, 스프린트 등 애자일 기법을 다 사용하고 있지만 정작 애자일 철학은 실행되지 않았다. 애자일 전환팀의 아니타 소머(Anita Friis Sommer)는 “대부분의 경우, 스크럼 마스터 혹은 프로세스 퍼실리테이터의 역할이 성공적인 변화에 핵심적이다”라고 강조하였다.
조직변화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초기에 작은 성공 사례를 발굴하고 공유함으로써 구성원들로 하여금 변화의 열망, 추진 동력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레고의 긍정적인 결과는 애자일에 대한 성공 경험도 일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레고에서는 몇몇 팀이 2005년부터 애자일을 부분적으로 적용하고 있었다. 즉, 2005년부터 애자일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지속적으로 쌓아온 것이다.
애자일 도입에 좌절하는 팀, 회사들은 구성원들의 저항을 주요 장애물의 하나로 꼽는다. 애자일에 대한 부정적인 경험을 가진 혹은 사례를 들은 구성원들이 완강히 반대하기 때문이다. 레고의 경우, 일부 팀이지만 애자일을 오랫 동안 적용하면서 관련 역량을 쌓고, 애자일에 대한 긍정적인 인상을 만들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대규모의 애자일 전환을 결정하고, 순항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전환 과정에서 애자일 원칙에 기반하여 팀들이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접근 방식도 놓쳐서는 안될 핵심 성공 요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