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세상을 바꿀 것이다’라는 이야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거의 모든 서비스들이 ‘AI 기반’이라는 것을 강조했지만, 사람들이 실제로 “이것이 AI구나”라고 그 힘을 체감하는 사례를 많지 않았다. 그래서 ‘AI’를 내세우는 제품 설명은 진부한 광고 문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다 생성형 AI가 등장하자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ChatGPT, Gemini, Copilot 의 사용기를 올리고, 앱 사용을 통해 업무 생산성을 어떻게, 얼마나 높였는지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하였다. 사람들은 생성형 AI가 산출한 결과물에 놀라움을 표하면서도 조만간 AI가 만든 산출물을 검토하는 관리자 외에는 곧 일자리가 잃게 될지도 모른다고 불안을 표출하기도 하였다.
이런 우려와 다르게 전문가들은 사람들이 AI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협업하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말한다.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일은 AI에게 맡기고 인간들은 보다 복잡한 업무를 추진함으로써 업무 생산성과 부가가치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고 말한다.
직장에서 AI와 인간이 협업하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Academy of Management Journal에 실린 연구를 소개한다.
어느 텔레마케팅 회사의 인간-AI 협업 체계 구축
연구자들은 한 텔레마케팅 회사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실시하였다. 직원들의 업무는 카드 영업으로,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신용카드를 소개하고, 궁극적으로 카드 신청을 이끌어 내는 것이었다. 이 회사에서는 영업 업무를 두 단계로 설정하고 있었다. 첫 번째 단계는 ‘영업 리드 생성’으로 직원들이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제품에 대한 일반적인 정보를 소개하고 고객의 관심을 조사하여 제품에 대해 더 알고 싶어 하는 고객을 영업 리드로 만든다. 두 번째 단계는 ‘영업 설득’으로 제품에 관심을 보인 고객의 개별적인 니즈에 맞춰 제품을 제시하여 구매를 유도하는 활동이다.
제품 소개와 관심도를 확인하는 영업 리드 생성은 수많은 프로토콜과 스크립트를 바탕으로 체계화된 활동인 반면, 영업 설득은 고객 개개인 별로 묻는 질문이나 니즈가 다른 변동성이 높은 상호작용으로, 리드 생성보다 덜 체계화된 활동이다.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상품 구매(카드 신청)를 유도하는 이 업무는 거절 가능성이 높아 성공률(카드 신청률)이 4%였으며, 영업 리드로 확정된 고객 중 카드를 신청한 비율은 8%이었다.
연구자들은 인간 혼자 작업하는 조건과 인간-AI 협업 조건으로 구분하여 그 성과를 측정하였다. 인간 혼자 작업하는 조건에서는 영업 리드 생성과 영업 설득을 한 명의 직원이 모두 수행한 반면, 인간-AI 협업 조건에서는 업무가 체계화되어 훈련이 수월한 영업 리드 생성은 AI에게 맡기고, 섬세한 상호작용이 필요한 영업 설득은 인간이 수행하게 하였다. 고객의 약 97%가 AI 대화 봇과 인간 직원을 구별하지 못해, AI가 고객의 질문을 이해하고 적합한 답변을 수행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직원의 업무 능숙도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지 확인하기 위해 이전 실적을 기준으로 고숙련자(성과 상위 33%)와 저숙련자(성과 하위 33%)를 구분하였다. 실험에 참가한 직원 모두 카드 신청 업무는 처음 맡는 것이었고, 동일한 교육을 통해 신용카드 판매에 대한 지식을 동등하게 확보하였다. 과연 결과는 어땠을까? AI는 직원의 성과를 높였을까? 그리고 직원들은 AI와의 협업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AI는 인간의 창의성을 높임으로써 성과를 높인다
연구자들은 직원들의 성과를 창의성, 실적 측면에서 측정하였다. 창의성은 조직이 구축한 지식 은행 밖의 질문을 해결하는 것(업무 맥락 안에 있지만 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문제)으로, 고객이 던진 전체 질문 중 교육에서 배우지 않는 내용에 대한 질문을 해결한 비율로 측정되었다. 실적은 영업 전화 후 24시간 이내에 전송된 링크를 통해 고객이 신용 카드를 개설했는지에 따라 측정되었다.
분석 결과, AI 지원을 받은 직원은 AI 지원을 받지 않은 직원에 비해 창의성이 2.3배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 받지 않은 내용에 대한 고객의 질문을 그 만큼 더 성공적으로 해결했다는 것이다. 직무 능숙도에 따라 AI 지원의 효과가 달라지는지 확인하자, 이러한 경향은 고숙련자에게 더 뚜렷하게 목격되었다. 저숙련자가 AI 지원을 받음으로써 증가하는 창의성의 크기보다 고숙련자가 AI 지원을 받을 때 발현되는 창의성의 크기가 더 큰(2.8배) 것으로 분석되었다.
직무의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성은 업무 성과를 향상시킬 것이라 추론할 수 있다. 실제로 인간 조건과 인간-AI 협업 조건의 카드 발급률을 비교한 결과, AI 지원을 받은 직원들이 AI 지원을 받지 못한 직원들보다 약 2배 가량 더 높은 판매율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무 능숙도에 따라 AI가 가져온 업무 변화는 다르게 지각된다
연구자들은 인터뷰를 통해 AI 지원에 대한 직원들의 생각과 경험을 더 심층적으로 조사하였다. 그 결과, 직무 능숙도에 따라 AI 협업이 가져온 업무 변화에 대한 지각과 경험이 달려지고, 결과적으로 성과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무에 대한 지각
직무 능숙도와 상관 없이, 직원 모두 AI로 인해 업무의 성격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AI 협업 이전에는 “전화를 걸었을 때 고객과 연결이 안되거나, 받더라도 바로 전화를 끊거나 야단치는 등 고객과 실질적인 소통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지루하고 특별한 스킬이 필요하지 않은 업무”로 인식하고 있었다. 아무리 소통 스킬이 좋더라도 영업 리드를 생성하지 못하면 그 스킬을 발휘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단순한 설명만 반복하는 것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영업 리드 생성을 AI 대화 봇이 맡게 되자 인간의 업무는 영업 설득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직원들은 “고객이 원하는 것에 대한 명확한 생각이 있고, 직원의 제품 소개를 진정으로 경청할 의사”가 있어 “고객과 실제로 대화에 참여할 가능성이 거의 100%”라고 말하며, “가치가 높은” 고객의 비율이 훨씬 더 많아졌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로 인해 업무의 강도와 난이도가 증가했다고 말했다.
심리적 경험
직원들의 상황 인식은 유사했지만, 이들의 심리적 경험과 성과는 직무 능숙도에 따라 차이를 보였다. 고숙련자의 경우, 높아진 업무 난이도를 일종의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이들은 “결국, 우리에게는 매일 지루하고 비기술적인 일(영업 리드 생성)을 처리하는 것은 다소 과하다. 우리는 더 어려운 일에 배정되어야 한다”, “고객과 접촉할 기회가 더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객과 소통해야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 수 있고, 반복해서 생각하면서 스크립트를 더 개선하고 새로운 스크립트를 만들어 나중에 다시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때 더 잘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저숙련자인 경우, 영업 설득에 집중할 수 있어 더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고 인정하면서도 “고객과의 소통 빈도가 높아지면서 소통 과정에서 제기되는 고객의 질문의 난이도 또한 높아진다. 고객이 제기하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막히는 경우가 많아졌다. 고객 입장에서는 제가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부담감이 배가된다”, “외래 환자만 보는 의사에게 중환자실 환자를 돌보게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높아진 업무 강도가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긴장과 두려움, 효능감 저하를 유발하고 있는 것이다.
창의성과 혁신 발현
고객과 더 많아진 소통 기회는 기존의 스크립트를 개선하고 더 효과적인 스크립트를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성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AI 지원이 업무 혁신 기회를 주는 것에는 모든 직원이 동의하면서도 자신이 혁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숙련도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고숙련 직원들은 “AI의 도움으로 지루하고 반복적인 통화에서 벗어나 원하는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스킬을 향상시키고 스크립트를 지속적으로 혁신할 수 있는 시간과 자유를 더 많이 얻었다”, “’지식은 실천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실제 비즈니스에서 끊임없이 문제를 접하고 해결하며 까다로운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스크립트 내용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혁신할 수 있다”, “AI 지원을 통해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를 더 자주 접하게 되니 창의력이 자극된다. 교육 받은 문제에 대해 다양한 해결책을 제공하고, 계속 혁신하며, 기존 해결책을 더 나은 해결책으로 대체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즉, 고객이 던지는 까다롭고 새로운 문제에 더 많이 노출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궁리하는 과정에서 창의성과 혁신을 발휘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숙련 직원들은 AI 지원으로 인해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하고 고객과 소통할 기회가 늘어났다는 것에 동의하면서도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며, 더 나은 해결책은 생각나지 않는다”, “저는 능력이 낮고 기초가 약해서 어려운 사례를 접했을 때 혁신하기 어렵다” 등 자신의 제한된 능력으로 인해 이러한 변화가 새롭거나 더 나은 답변을 찾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꼈고, 따라서 혁신적인 성과는 제한적이라고 답했다.
직원들에게 요구되는 창의성은 조직 맥락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새롭고 유용한 아이디어, 방법을 창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직원들이 창의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직무 관련 전문성이 요구된다. 고숙련 직원에게는 새로운 문제가 지적 자극으로 작용하여 누적된 직무 지식을 기반으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로 연결되었지만, 지식이 부족한 저숙련 직원에게 새로운 문제는 지적 자극이 아닌 지적 과부하를 불러일으키는 요소로 작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지각은 직원들의 감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고숙련자의 경우, AI와의 협업을 통해 높은 사기, 열정, 고조된 기분 등 긍정적인 감정을 더 많이 경험했다. 반면, 저숙련자의 경우, 긴장감, 사기 저하, 거부감 등 부정적인 감정을 경험하였다.
이것은 AI 확대 적용에 대한 직원들의 태도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고숙련자의 경우 업무 비효율을 개선하기 위해 AI 사용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저숙련자는 “AI가 계속 늘어나면 우리가 처리해야 할 업무가 더 어려워질 텐데, 제가 그 업무를 완수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라고 말하며, 현행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공적인 채용과 배치는 직무 부합성에서 기인한다. 기존에는 인간-직무 부합성만 따졌다면, 앞으로는 기계(AI)라는 선택권이 추가되어 인간이 더 잘 할지, 기계가 더 잘 할지를 고려하여 적합한 선발하고, 직무를 설계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 하나의 직무 안에서도 기계가 더 잘 하는 것은 기계가, 사람이 더 잘 하는 것은 사람이 수행할 수 있게 업무를 잘 설계하는 조직이 생산성을 혁신적으로 개선할 것이라 예상된다.
AI 지원의 유익성을 인정하면서도 업무 성과 창출력이나 AI 확대 적용 의사가 직원의 직무 숙련도에 따라 달라졌던 것처럼, 조직에서 인간-AI 협업 체계를 구축할 때, 저숙련 직원 또는 그것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을 대응하는 것이 AI도입의 성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이슈로 작용할 수 있다. AI 도입 후 직무 숙련도에 따라 성과 격차가 극명하게 벌어진다면 조직에 긴장감이 조성되고, 더 나아가 조직 분위기를 훼손할 수 있다. 따라서 HR은 저숙련자의 스킬 향상을 지원하는 동시에 그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돌볼 필요가 있다. 학습 공동체, 멘토링은 개인의 스킬, 집단 지식, 사회적 지원을 동시에 강화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