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KR과 어떤 인연이 있으세요?”
십수 년간 대기업 HR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특히, 모 대기업에서는 보상을 위한 단순 평가제도를 버리고, 무엇이 성과인지부터, 1년 내내 우선순위에 집중하고, 소통하고 인정하는 성과관리 체계를 구축했다. 그룹 전체의 리더와 구성원들에게 성과관리체계에 관한 내부 브랜딩부터 프로세스와 시스템까지 체계적으로 구축하고, 실행과 정착까지 몇 년간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적이 있었다. 당시 그룹사의 대규모 M&A건으로 실사를 진행하던 글로벌 최고수준의 G 투자은행과 M 컨설팅펌으로부터 성과관리 시스템에 대한 높은 평가를 받았을 때의 기분은 15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오랜 대기업 생활을 접고, 2016년부터 스타트업 영역에서 창업자, 스타트업 CEO와 직원들을 돕는 성장 파트너로 일해오고 있다. 스타트업의 성장을 돕는 여러가지 일 중에서 대기업 방식의 평가체계가 아니라 스타트업의 빠른 성장에 맞는 성과관리 체계를 연구하던 중 OKR을 접하게 되었다.
당시 OKR에 대해서 공부하려면 해외 자료를 보는 수밖에 없었다. 몇 권의 해외서적과 아티클과 OKR전문가들의 블로그 등이었다. 그렇게 과거의 성과관리 구축/운영 경험과 OKR에 관한 연구를 바탕으로 OKR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 후 종종 아마존에서 ‘OKR’을 검색하면서 새로운 책이 있는지 확인하던 중, OKR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은 책 한권이 계속 1위에 랭크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호기심에 미리보기(Look Inside)를 클릭해서 목차와 일부 내용을 보니 OKR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바로 구매하여 읽기 시작했다. 한글 책이 아닌 영어 책을, 그것도 이북(e-book)으로 끝까지 푹 빠져서 읽은 유일한 책이었다. 이 책이 바로 존 도어의 ‘Measure What Matters’다.
이 책을 나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한국의 많은 기업들과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출판사인 Portfolio 사에 한국어 출판권을 사고 싶다는 메일을 보냈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이미 한국의 모 출판사에서 판권을 사갔다는 친절한 답이었다. 그러나, Portfolio사의 담당 직원은 그렇게 메일을 끝내지 않고, 한국의 모 출판사 연락처를 메일에 남겨주었다. 당장 그 출판사에 연락했고 만났다. 국내외 성과관리 흐름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OKR은 어떻게 그 대안이 되고 있는지 등을 이야기 나눴다. 그 대화 후, 책 번역에 대한 감수를 요청받았다. 이렇게 나오게 된 책이 ‘존 도어 OKR’(2019.3, 세종서적)이다.
4년이 넘는 시간동안 OKR의 도입, 실행 과정을 정리한 노트들이 수백 개에 이르렀다. 이 노트들을 2019년 말부터 글로 정리했고 출판하기로 결정했다. OKR은 한 가지의 정답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다양한 적용 사례를 하나라도 더 담고자 했다. 또 조직마다 다양하고 유연하게 적용한 사례들을 구조화해서 어떤 조직이든 자신들에게 맞게 도입할 수 있도록 연구하고 고민했다. 그러다 보니 당초 2020년 9월 계획이던 출간은 1년 가까이 출판이 지연되었다. 이렇게 나온 책이 바로 ‘OKR로 빠르게 성장하기(OKR & GROWTH)다.
[이길상 대표는 국내 기업에 OKR을 컨설팅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OKR로 빠르게 성장하기(OKR& GROWTH)’라는 책을 출간했다.]
OKR에 대한 기존 기업들의 고민과 오해
OKR 도입을 검토하는 기업은 두가지 중 하나에 속할 것이다. 첫째는 현재까지 MBO, KPI와 같은 도구를 사용하다가 변화를 모색하는 경우다. 둘째는 스타트업과 같이 현재 성과관리 체계가 없는 상태에서 OKR을 도입하려는 경우다. MBO나 KPI를 사용하고 있는 기업들은 평가제도에 대한 고민이 가장 많다. 지금까지 해 온 MBO, KPI 평가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OKR을 새로운 평가 제도의 대안으로 생각한다. 어떤 CEO는 “앞으로 우리 회사는 새로운 평가 방식으로 OKR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앞으로는 분기별로 목표를 수립하고, 목표 달성율로 평가하고 보상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새로운 평가 도구로 OKR을 도입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또 다른 기업의 담당자는 KPI의 대체제처럼 OKR을 도입해 보니, 여러 부분에서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왜 평가의 고민을 OKR로 해결하려는 걸까? 성과관리와 평가제도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성과를 관리한다는 것을 ‘평가’를 잘해서 이에 따라 보상을 해주면 성과를 더 잘 낼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평가를 하면, 사람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더 행동을 강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실행 주기가 분기로 알려져 있는 OKR을 알게 되면, 평가를 더 자주 해서 행동을 더 강화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1년에 한번이 아니라 네 번하는 만큼 평가로 인한 효과를 더 강화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지, OKR을 평가로 도입하게 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살펴보자.
OKR로 평가하겠다고 하면, 우선 리더와 구성원들이 ‘평가’라는 말에 처음에는 열심히 할 것이다. 그러나, 1년도 안되서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고 불만은 더 커진다. 네 번의 평가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할 일이 많아지기 때문에 정작 해야 할 일에 방해가 된다. 더 큰 문제는 OKR을 평가라고 생각하니, 달성율 걱정에 목표를 야심차고 도전적으로 수립하지 못하게 된다. 목표가 도전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데, 평가의 기준이 되어 버린 것이다. 평가 초기에는 다소 높은 목표를 수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점점 예전과 비슷한 수준의 목표로 돌아가게 된다. 결국 평가를 많이 하면서 시간 소모는 늘어나지만, 추구하는 목표에 따른 결과적인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OKR은 평가도구가 아니다. OKR은 ‘경영 도구’다. 조직의 성과를 창출하는 중요한 일에 구성원 모두가 함께 집중하고, 자율적이고 자발적으로 기여하면 지속적으로 성과가 창출된다는 진리를 실행할 수 있는 경영 도구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는 도전을 독려하면 성취와 성장을 만들 수 있다는 상식을 실천하는 경영 도구다. 경쟁보다 협업을 통해 조직의 성과 그 자체에 집중하게 만드는 도구다. 그래서 OKR은 도전해 보고 싶은 목표가 아닌 하던 많은 업무를 기계적으로 수행했는지 체크하는 목적으로는 작동하지 않는다. 단순히 작성하는 방법만 익힌다고 작동하지 않으며, 차등 보상을 위한 평가 도구로는 더더욱 작동하지 않는다.
새로운 평가제도를 필요로 하는 기업이라면, 평가를 통해서가 아니라 OKR을 통해서 목표를 도전의 대상으로 바꿔야 한다. 그렇게 목표에 도전하면서 성과를 창출하고 나서, 이 도전의 가치와 실제 성과의 크기, 기여의 크기와 품질, 새로운 시도와 변화 등을 평가하면서 성장을 논하는 평가제도의 본질에 맞게 고민해야 한다. 달성율이 아니라 성장의 크기와 품질에 관심을 가지고, 성과를 만들어내는 기여와 변화 행동의 기준을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목표가 도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성장이 확연히 드러나야 하고, 다양한 차이가 피드백으로 전달되어야 좋은 평가다. 구성원 대부분이 낮은 목표에 높은 달성율을 만든 후, 기대하는 등급보다 낮은 등급을 받게 된다면, 항상 평가제도의 공정성 시비가 계속되기 마련이다.
OKR에 대한 스타트업의 고민과 오해
스타트업의 고민은 다양하다. 스타트업은 사람이 부족한데, 할 일은 많다. 매일같이 새로운 이슈에 대응해야 하는데, 이 와중에 OKR이 또 다른 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특히 스타트업의 리더들은 빠르게 변하는 스타트업에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OKR 작성하고 대화 나눌 시간이 어디있냐고 걱정한다.
스타트업은 무엇보다 빠른 성장이 필요하다. 동시에 생존도 걱정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생존을 위해서 해야 하는 일과 성장을 위해서 해야 할 일 모두가 조직에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부족한 자원때문에 이 두 가지 중에서 생존을 선택한다. 당장 버텨내기 위해 소위 ‘돈 되는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스타트업이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일들에 자원을 더 많이 투입할 수밖에 없게 된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어쩔 수 없이 생존을 선택하면서 성장이 정체된 경험을 하고 있다. 여기서 빠져나와서 성장의 속도를 올리려면 우선순위가 높은 일에 조직의 자원을 최대한 집중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OKR은 성장을 위해 우선순위가 가장 높은 더 중요한 일을 선택하도록 요구한다. 그리고 거기에 집중해서 실제적인 성과를 만들도록 요구한다. 성장에 집중하여 생존까지 모두 얻을 수 있는 전략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만약, 스타트업이 생존 중심의 적정 매출 확보 목표의 OKR을 열심히 한다면, OKR은 잘 한 것 같지만, 성장이나 변화를 얻지 못하는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어느 정도 성장을 하고 있는 스타트업들은 경영방식, 성과관리 방식 경험이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 제품/서비스로 시장에 안착해 왔다. 그러다 보니 어느 정도 성장을 하고 조직 규모가 커질 때, 지금까지 체계없이 일해왔고, 앞으로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체계를 도입할까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스타트업의 성장 과정이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소위 대기업들이 사용한 보상을 위한 평가제도 방식의 체계를 도입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체계가 있다고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다. 관리가 아닌 성장과 일하는 문화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 체계여야 한다. OKR은 조직이 현재의 자원으로 최고의 성장을 만들 수 있도록 조직과 구성원의 일을 높은 우선순위에 집중하게 만들어서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도구이자 일하는 문화를 만드는 체계이다.
OKR 안착을 위한 가이드
OKR을 시작한 초기 기업들 고민의 대부분은 “우리가 OKR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큰 맘먹고 OKR을 도입했는데, 목표 수준은 그렇게 높은 것 같지 않고, 또 한두분기 해 보면서 구성원들은 달성하지 못하는 목표 때문에 어렵다고 하소연을 한다.
OKR은 조직의 특성이나 문화와 맞물려 움직이다. 현재 조직의 업무 특성과 조직 구조, 일하는 문화를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큰 목표에 도전하자고 OKR을 수립하면 작동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OKR을 성공하는데 단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OKR만 하면 구글처럼 10배 성장을 반복해서 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조급하게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OKR을 시작하고 나서, “일이 더 많아지기만 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도입 초기에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대표적인 실행 과오다. 조직 모두가 중요한 우선순위에 집중하면서, 현재 하는 일은 다하고, 추가로 큰 도전적인 목표를 추가해서 일할 수 없다. 조직부터 개인 업무에 우선순위가 없는 경우다. 대기업부터 스타트업까지 바쁘지 않은 조직이 없다. 모두가 많은 일을 처리하고 있다. 직원들은 주 40시간, 최대 52시간도 모자랄 정도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더 큰 목표를 세우자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괴롭다. 회사는 강력하게 밀어붙이려고 OKR로 평가를 더 강화하기까지 한다. 우선순위에 집중하기 위해서 하던 일을 줄이거나 조정하는 것에 대해서, 리더와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구성원들의 고통은 더 커지게 된다.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회사 OKR 중 Key Result들이 팀에게 그리고 개인에게 몇 개씩 할당되어 배정된다. 도전하고 싶기 보다는 할 수밖에 없는 일이 되는 경우가 많다. 리더들은 시간이 없기 때문에 효율적인 탑다운 방법은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구성원들은 내 의사와 무관하게 된다면, 정말 잘 해내야지라는 도전에 대한 열정이 생기지 않게 된다. 어떻게든 시간 안에 해내야 하기에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 짓고자 한다. 자발적이고 협력적인 문화가 생기기보다는 수동성이 더 강화될 수 있다. 시킨 것 해내기도 벅차기 때문에 다른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제시할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주변 동료들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동료가 반갑지만은 않다. 수동성이 강화될수록 도전과 협업은 줄어들고, 평가를 통한 통제가 더 강화되는 악순환으로 반복될 뿐이다. 아래 몇 가지 점검 사항으로 우리 조직의 OKR 도입 과정을 체크해 보자.
OKR 도입 이후,
- 내가 하는 일이 더 많아졌는가?
- 나는 조직과 나에게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느끼는가?
- 더 도전하고 싶은 목표를 수립하고 싶어지는가?
- 목표에 대한 소통이 늘어나고 있는가?
- 일을 처리하는 방식에서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가?
1,2,3 번 항목은 OKR에 우선순위를 담고 있는지 점검할 수 있다. 2,3번은 자발적으로 OKR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얼라인먼트를 점검할 수 있다. 4번은 수립부터 실행까지 과정에서 집중과 대화의 문화가 늘어나고 있는지 점검할 수 있다. 5번은 목표의 도전성을 점검할 수 있다. 위 항목의 응답을 보고 OKR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파악해 볼 수 있을 것이다.
OKR을 왜 해야 하는지 조직 내에서 리더와 구성원들 간의 공감대가 가장 우선이다. OKR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변화가 무엇인지 리더와 구성원 간에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자기 조직만의 OKR 도입이 가능할 것이다. 한 번에 모든 변화를 만들려고 조급해 하지 말자. 조직 전체가 함께 바라볼 목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우선하자. 그리고 이 과정에서 리더와 구성원들이 대화하고 관점과 생각을 조율하면서 맞춰보자. 그리고 실행 과정에서 집중하도록 자주 대화해 보자. 목표가 중요한 것, 도전의 대상으로 살아나게 되면, 시간이 지날수록 목표가 더 전략적이고 멋진 목표로 변할 것이다. 대화가 자리를 잡을수록 협업이 일어날 것이다. 더 나은 목표를 향한 도전은 이런 바탕에서 가능하다. 현재 나의 조직은 어디에 있는가? 거기서 OKR을 시작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