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소개는 출판사에서 HR 블레틴 독자들만을 위해 작성한 소개글로 운영됩니다.
“어디 새로운 아이디어 없어? 뻔한거 말고 참신한 걸로 말이야.”
회사를 다니다보면 한번쯤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래서 몸 안에 있는 모든 창의력을 끄집어내어 나름 아이디어를 들고 가면 으레 이런 대답이 돌아오기 일쑤다. “이건 너무 비현실적이잖아. 탁상공론 말고 되는 아이디어를 가져와요.”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란 말이 입안에 맴돈다. 창의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으라고 다그치기 전에 그런 아이디어가 뛰어놀 수 있는 조직이나 만들어주지 말이다. 그런데 창의력이 샘솟는 조직을 만들 수나 있을까?
물리학자이자 바이오테크 창업자, 최고경영자인 사피 바칼의 책 <룬샷>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미쳤다’ ‘별 볼일 없다’고 손가락질 받는 아이디어를 발굴해 육성해 이를 조직의 성장 동력으로 만드는 방법을 과학적으로 알려준다. 뭐 이런 이야기는 이미 다양한 경영서에서 ‘혁신’ ‘창의’란 이름으로 많이들 하지 않냐고? 그렇다. <룬샷>도 어찌보면 그렇고 그런 혁신 방안을 나열하는 책들 중 하나 같지만 태생부터가 기존의 경영서와는 다른 점이 많다.
과학자의 시선으로 읽는 경영
먼저 <룬샷>은 경영을 과학자의 시선으로 접근한다. 경영과 과학은 어딘지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저자의 이력을 살펴보면 이해가 간다. 저자 사피 바칼은 열세 살부터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물리학과 수학을 공부했다. 이후 하버드 대학교를 최우등 졸업하고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물리학 박사를 받았다. 이론물리학자로 명성을 쌓아가던 2001년, 암 신약을 개발하는 바이오테크 기업을 설립하고 10여 년간 최고경영자를 지냈다. 이뿐 아니라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는 대통령 과학자문 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과학계와 경영계 모두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인물이다.
[상전이(출처:흐름출판 제공)]
저자는 팀이나 기업, 나아가 국가가 극적 변화를 겪는 이유를 ‘상전이'(복잡계의 갑작스러운 변화)라는 과학적 원리로 설명한다. 그는 조직의 ‘문화’보다는 ‘구조’의 작은 변화가 혁신적인 발전을 이끌어 낼 수 있으며 따라서 ‘문화’를 바꾸려하기 보다는 조직의 ‘설계’를 어떻게 하느냐가 성패를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그럼 어떤 조직이 창의적 아이디어를 생산하고 이를 현실화 할 수 있을까? 저자는 0도의 경계에서 물이 얼음으로 얼음이 물로 자유롭게 순환하는 것처럼 창의성과 효율성의 동적 균형을 이룬 조직은, 창조적 해결책을 도출해 위기를 성공으로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상전이(출처:흐름출판 제공)]
노키아가 애플이 되지 못한 이유
2000년대 초반 세계 휴대폰 시장의 절대강자였던 노키아는 혁신의 대명사였다. 노키아의 CEO는 위계서열이 없고 실수를 해도 용납되는 조직 ‘문화’가 성공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2004년 이런 문화에 자극을 받은 노키아 엔지니어 몇 명이 놀라운 아이디어를 낸다. 인터넷이 가능하고 터치스크린에 고해상도 카메라가 달린 휴대용 전화기. 여기에 온라인 앱스토어까지. 듣고 보니 애플 이야기 같은데? 그렇다. 지금의 애플을 있게 만든 아이폰의 아이디어는 사실 노키아가 3년 전에 했던 기획이었다. 실수를 용납하는 ‘문화’를 가졌다던 노키아는 이 아이디어를 어떻게 했을까? 노키아의 경영자들은 이 아이디어를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로 묻어버렸다. 3년 뒤 엔지니어들은 자신들의 ‘미친’ 아이디어가 아이폰으로 구현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렇다면 스티브 잡스와 노키아 경영진이 달랐던 점은 무엇일까? 애플에서 쫓겨났던 스티브 잡스는 여러 실패를 경험한 뒤, 크리에이터(개발자, 과학자)와 관리조직의 분리하되 서로 소통하는 ‘구조’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리더는 독불장군보다는 개발자와 관리조직 사이의 소통을 책임지고 아이디어의 이전과 교환을 장려하는 정원사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즉, 아이디어가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문화’, ‘사람’에 기대어서는 안 되며 ‘조직’ 설계와 리더의 ‘관리’가 중요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잡스의 애플 재설계 덕분에 잡스 사후에도 애플은 조니 아이브와 같은 예술가와 팀 쿡 같은 관리자가 시너지를 내는 기업으로 남게 됐다.
위기가 닥칠수록 기업들은 저마다 비상 경영을 선포하고 창의성과 혁신을 강조한다. 그러나 혁신의 결과는 더 큰 혼돈과 무의미한 일거리로 돌아오곤 한다. 혁신이 오히려 조직을 파괴하고 조직원들의 반목하게 만든다. 코로나19 펜데믹 이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혁신에 대한 ‘의지’의 피력이 아니라 사피 바카의 말처럼 창의와 효율이 공존하는 조직이 될 수 있는지 점검하고 다시 설계해 보는 과학적 접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