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에서 성과를 내는데 필수적인 역량 중의 하나가 대인관계, 영향력 스킬이다. 해당 스킬이 뛰어난 사람들은 조직 내 여러 부서, 동료로부터 중요한 정보를 공유받고, 그들의 협조를 잘 이끌어낸다. 반면 제아무리 업무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관계 자본이 부실한 사람들은 “왜 내 뜻을 따라주지 않을까?”라고 혼자 좌절하거나, 주변으로부터 “그래, 너 잘난거 알아. 그래서?” 라는 냉소적인 반응을 얻기 쉽다. 신뢰 깊은 관계를 기반으로 업무를 추진하는 사람들은 다소 논리력이 떨어지더라도 동료들을 설득하고 협업을 이끌어내지만, 완전무결한 논리를 갖춘 능력자라도 동료들의 신뢰를 얻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행할 기회를 얻거나 성과를 내기 어렵다.
관계 형성, 영향력 행사의 선행 요인은 신뢰이다. 이러한 신뢰가 성과와 변화 추진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어떻게 신뢰를 쌓을 수 있는가에 대해 구체적인 방법을 내놓는 사람 또한 드물다. 그러나 조직 행동과 의사결정 과정(Organizational Behavior and Human Decision Processes) 저널에 실린 한 연구에 의하면, 신뢰 형성에 큰 투자나 거창한 방법론이 필요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알아봐줄 때 신뢰를 느낀다
한 병원의 업무 생산성을 연구하던 알리사 유(Alisa Yu)는 간호사와의 인터뷰 중에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환자들의 두려움, 스트레스를 읽어주면 신뢰가 형성되어 일을 더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수술을 앞두고 두려워 하는 환자를 보고 ‘아 저 환자가 두려움에 떨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환자에게 “많이 두려우시죠?”라고 말을 건넬 때, 즉 그들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읽어주면 환자로부터 신뢰를 얻게 되고 그에 따라 업무 효율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알리사 유는 간호사들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바로 연구팀을 구성하여 실험에 착수하게 된다.
감정인식이 신뢰에 미치는 영향은 부정적인 감정 상태일 때 더 극명해진다
실험 결과는 간호사들의 말이 사실임을 입증해 주었다. 연구에 참가한 사람들은 “기분 좋아 보이는데”, “우울해 보이네”와 같이 자신들의 긍정적, 부정적 감정을 알아봐주는 사람들을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높게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읽어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느끼는 신뢰의 차이는 부정적인 감정 상태일 때 더 극명하게 벌어졌다. 연구자들은 이것을 ‘ 값비싼 신호 이론(costly signaling theory)’으로 설명한다. 부정적인 감정 상태에 대해 묻는 것은 관계적으로 더 큰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며, 자신의 관심, 시간, 노력 등 자원을 더 많이 투입하게 되는, 즉 비용이 많이 드는 행동이기 때문에 상대방으로 하여금 더 높은 신뢰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감정 인식이 핵심이다
정말 감정 인식이 신뢰를 형성하는 것일까? 감정 인식이 중요하다기 보다는 그런 행동이 나에게 관심을 주는 행동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신뢰 형성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닐까?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감정 인식이 핵심인 것으로 보인다. 실험 참가자들은 “미팅이 잘 끝난 것 같은데( 잘 안된 것 같은데) 어땠어?”라고 상황을 묻는 사람보다 “미팅 끝나고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 안좋아 보이는데), 지금 마음이 어때?” 라고 감정을 묻는 사람에게 더 높은 신뢰를 보였다. 연구자들은 “사람들은 사실, 서술적 정보가 아닌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할 때 상대방에 대해 더 강한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는 여러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미팅 상황(사실)을 묻는 상대보다 자신을 드러내게 되는, 즉 감정을 묻는 상대에에 친밀감과 신뢰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틀리게 말하는 것이 아무 말 없는 것보단 낫다
우울한 사람에게 “기분 좋아보이는데”라고 말하는 것처럼 헛다리 짚는 상황이 연출될까봐 걱정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상대방의 감정을 부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아예 언급하지 않는 것보다 신뢰 형성에는 더 좋은 영향을 미친다. 연구 참가자들로부터 가장 높은 신뢰 점수를 얻은 것은 상대의 감정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언급해주는 사람이었고, 그 뒤를 따르는 것은 부정확한 감정 인식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상대의 감정을 알아봐주지 않는 사람들은 가장 낮은 신뢰 점수를 얻은 것이다.
누군가의 감정을 물어보는 것, 내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 상태인 누군가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는 것이 조심스럽게 느껴져 “무슨 일 있었어?” 라고 돌려 묻거나 모른 체 하는 것이 배려라고 생각해 언급을 피하기도 한다. 그러나 위의 연구에서 알 수 있다시피 상황을 묻거나 모른 체 해주는 것은 신뢰, 관계 형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동료들과 관계를 쌓고 싶다면 상대방의 감정을 읽어주는 것에서 시작해보면 어떨까? 다소 어색하고 조심스럽더라도 부담없이 시작해보자. 어차피 언급을 안하는 것보다 틀리게 이야기하는 편이 신뢰 구축에는 더 나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