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는 원래 외로운거야”
우리는 흔히 리더는 외로운 자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왜 그럴까요? 왜 리더는 외로울 수 밖에 없는 것일까요? 한 연구자는 동료 사이에는 ‘상호호혜’ 법칙이 작용하지만 리더와 구성원 사이에는 이것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A가 업무 스트레스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동료 B가 다가와 “A야, 무슨 일 있어? 요즘 왜 이렇게 우울해 보여?!”라 고 물으면 A는 B의 관심을 고맙게 여기게 되고, B에게 힘든 일이 있는 것 같으면 똑같이 다가가서 “B야, 무슨 힘든 일 있어? 안색이 어두워보여”하며 내가 힘들 때 받은 위로를 상대에게 똑같이 베풀게 됩니다.
반면 리더가 A 혹은 B에게 보내는 관심은 상호호혜의 법칙을 받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리더의 관심을 그저 당연한 ‘리더의 역할’로 인식하기 때문이죠. 리더가 동료 B와 같이 “A야, 무슨 일 있어? 요즘 왜 이렇게 우울해 보여?!”라고 말하는 것은 리더로서 당연한 책임을 이행한 것일뿐 ‘나한테 관심을 주는’ 고마운 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리더들은 더 외롭습니다. 동료일 때보다, 즉 리더가 된 이후로 ‘리더답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더 관심을 기울이고, 더 리더십을 발휘하려고 애쓰지만 돌아오는 것은 같은 동료일 때보다 ‘더 없다’고 느끼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곧 “아 역시 리더의 자리는 외로운 것이구나”라고 조용히 한탄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리더의 외로움은 ‘피할 수 없는’ 리더의 숙명인 것일까요? 한 무리의 연구자들이 이 ‘리더의 외로움’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에 들어갔습니다. 그랬더니 동일한 상황, 즉 똑같이 외로움을 느낀 리더라도 그의 대응 방식에 띠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연구자들은 아침, 점심, 저녁에 설문을 통해 각각 리더의 업무 강도, 외로움과 업무 몰입 수준, 반추 내용을 측정했는데요, “ 업무와 관련된 이슈를 생각하면 긴장된다, 짜증난다, 스트레스 받는다” 등 외로움에 대해 감정중심적으로 반추하는 리더들은 다음날 팀원들에게 덜 지원적인 모습을 보이고, 더 외로움을 느끼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흥, 너희들이 나를 외롭게 했지? 이 모든 상황이 짜증나고, 나도 니네들 안도울거야”라고 행동하지만 결과적으로 더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죠. 이러한 행동은 팀원들로 하여금 리더의 역량을 낮게 평가하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외로움에 대해 “나의 업무 수행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내일 어떻게 해야 할까? 새롭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등 업무 중심적으로 반추하는 리더들은 다음날 더 높은 업무 몰입을 보이고, 팀원들을 더 돕고, 외로움은 덜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Don’t take it personally”
이 연구를 읽고 한 교육 과정에서 만난 퍼실리테이터가 생각났습니다. 그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제 관점에서 짜증나고 힘든 상황에서도, 전혀 동요없이 평온하게 과정을 이끌어 나갔습니다. 쉬는 시간에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냐? 자신이 의도한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에 대한 좌절감이나 상대에 대한 서운한 마음, 짜증이 나지 않냐?”라고 묻자 그는 “모든 사람은 지혜가 있는데 내 말이 잘 전달되지 않는 것은 그에게 맞는 적합한 수단을 못 찾은 것일 뿐이다. 내가 전달하고 싶은 의도, 내용이 상대에게 어떻게 전달될 수 있지? 무엇이 그것을 가로막고 있지?(예: 상대방의 인지 양식) 어떻게 하면 내가 전달하고 싶은 것을 상대방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 방법을 찾는다고 답했습니다. 즉, 개인적으로,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해결해야 할 문제로 바라보는 것이 그의 평정심의 비결이었죠.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문제해결 중심적으로 상황을 바라본다는 것은 쉽게 들리지만 막상 실천하려고 보면 잘 되지 않기 마련인데요. 그래도 그 때 바로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그래,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문제해결 관점으로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 좋댔어. 그것이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고 팀에게도 유익한 결과를 가져온댔어. 내가 이렇게 하고 있는 목적을 생각하자”라고 의식적으로 관점을 바꾸는 훈련해 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