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도전을 위해 다니던 우아한형제들을 퇴사하고 이직을 준비할 때 겪은 일입니다. 찾아갔던 10여 군데의 스타트업들에서 똑같이 볼 수 있었던 것은 벽마다 붙여 둔 각 회사들의 ‘일하는 방법’이었습니다. 물론 현재 근무 중인 설로인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우아한형제들의 ‘송파구에서 일을 더 잘하는 11가지 방법’은 스타트업의 조직문화를 대표할 정도로 유명한데요. 이는 KB국민은행의 ‘여의도에서 일 잘하는 방법 11가지’, 컴퍼니빌더형 액셀러레이터 래버리지의 ‘래버리지 일잘러 되는 법 6가지’ 등으로 다양하게 인용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타트업들은 ‘일하는 방법’을 왜 만드는 걸까? 꼭 필요한 걸까? 직원들은 얼마나 공감하고 이해하는 걸까? 회사가 생각하는 방향을 충분히 반영했을까? 어떻게 만들어야 제대로 만들 수 있는 걸까? 한번 정하면 바꾸기 어려운 걸까?와 같은 생각들이요. 설로인에서는 지난 4개월에 걸쳐 ‘설로인에서 일하는 방법’을 새로이 만들었는데요. 그 과정에서 검토했던 사항들을 통해 제가 느끼고 생각하는 답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1. 일하는 방법, 꼭 만들어야 할까?
스타트업이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것은 기존에 없던, 혹은 기존의 것보다 경쟁력 있는 혁신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를 선보였다는 것입니다. 쿠팡은 배송의 혁신을, 우아한형제들은 배달의 혁신을, 토스는 금융의 혁신을 이룬 것처럼요. 이들이 혁신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를 선보일 수 있었던 이유는 구태의연한 사고와 전통적인 일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혁신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그들만의 방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스타트업들의 일하는 방법은 회사의 방침이나 그라운드룰 이상의 생존과 혁신을 위한 필수요소라고 생각합니다.
2. 일하는 방법, 우리 회사만의 독창성이 있어야 할까?
많은 회사의 일하는 방법들을 보면 책이나 타사의 사례를 인용한 것이 꽤 있는데요. 아마도 경영진들이 ‘몰입하여 일하는 방법, 즐겁게 일하는 방법, 성과를 내면서 일하는 방법’ 등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그 해답을 주변 회사의 사례나 책, 유튜브 등을 많이 참고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방법들은 이미 그 방법들의 효과가 검증되었고, 문구가 잘 다듬어져 있어서 직원들에게 쉽게 와 닿을 수 있어 좋은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일반적인 방법들은 각 회사별로 다른, 한 회사의 혁신과제(미션)를 달성하기 위해 꼭 필요한 그들만의 방법이라고는 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앞서 스타트업들이 일하는 방법을 만드는 이유를 회사가 혁신하고자 하는 영역에서 생존하기 위한 그들만의 방법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기에 각 회사에 맞는 독창적인 일하는 방법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설로인은 단백질 효소의 최적활성도를 조정하여 고기의 효소를 촉진시키고 온도, 미생물 수치, 외부충격 등을 통제하여 고기를 최적의 상태로 유지하여 ‘최고의 고기 경험을 일정하게 주는 브랜드’를 만들고자 하는 비전이 있습니다. 이런 연구개발적인 미션을 달성하기 위해 설로인이 일하는 방법에는 ‘가설을 세우고 끝까지 검증하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우리 회사의 미션 달성을 위해서는 우리 회사에 맞는 고유의 전략(방법)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3. 직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일하는 방법, 어떻게 만들까?
‘설로인에서 일하는 방법’을 만들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은 ‘변화를 위해서는 직원들의 공감이 꼭 필요할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워크숍을 통해 전 직원이 함께 만들어 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시공간적 어려움도 있고, 같은 항목의 일하는 방법에 대한 개인의 시각 차이도 있고, 개개인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방법들도 달랐기에 합치점을 찾기가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결국 설로인도 전 직원의 참여보다는 일부 직원들의 주도로 일하는 방법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두 가지 방법을 통해 직원들의 참여를 늘리고, 모두가 공감하고, 함께 만든다는 마음이 들 수 있도록 했습니다. 첫 번째 방법은 전 직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사전 인터뷰였습니다. ‘현재 일하는 동료에게 바라는 점은? 함께 일하고 싶은 동료상은? 현재의 협업에서 아쉬운 점은? 앞으로 어떻게 일했으면 좋겠는지?’ 등 직원들이 생각하는 현재 설로인이 가진 협업의 문제점과 앞으로 변화해야 할 방향에 대해 들었습니다. 이 질문들은 ‘설로인은 어떻게 일해야 할까요?’에 대한 답변과 달리 직원들의 답변 간에 유사한 점이 있어 문제점과 방향성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수 개월에 걸쳐 완성된 10가지 방법들에 대해 최종 확정하기 전, 직원들의 피드백을 받았던 것입니다. 공감이 되지 않거나 우리 회사와 동떨어진 방법, 머리에 콕 박히지 않는 표현, 뜬 구름 잡는 것과 같은 목표, 이해가 되지 않는 설명, 어려운 단어 등에 대해 피드백을 받고 수정했으며, 그 과정에서 일하는 방법들 간의 유사성이라던가, 배치(背馳)가 발견되어 최종적으로는 9가지 방법으로 완성된 것은 매우 뿌듯한 일이었습니다.
[구성원들의 참여를 통해 확정된 설로인에서 일하는 방법 9가지. 상단에 표기된 2021.ver이 일하는 방법의 진화를 예고하는 것처럼 보인다.]
4. 어떻게 하면 직원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을까?
‘설로인에서 일하는 방법’ 초안을 대표님께 보여 드렸을 때, 대표님의 첫마디는 “중학생도 한 번만 읽으면 이해가 될 수 있을 만큼 쉬웠으면 좋겠어요”였습니다. ‘송파구에서 일을 더 잘하는 11가지 방법’이 적힌 포스터를 보면 아랫쪽에 각각의 방법에 대한 상세 설명이 나오는데요. 각각의 방법에 대한 직원들의 이해를 높이고, 의미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 이런 서술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설명까지 세세하게 읽는 사람이 실제 많지 않다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설로인은 자주 읽지 않고, 한 번만 읽어도 쉽게 이해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여 함축된 의미를 지닌 한자어보다는 길어지더라도 일상적인 우리말을 쓰려고 했고, 쉽게 기억에 남고 스스로 계속해서 의미를 곱씹을 수 있도록 예시(스토리)를 많이 담았습니다. 전공서적과 소설책 중에 어떤 것이 읽기가 쉽나요? 어떤 것이 읽은 후 더 오래 기억에 남나요? 회사 곳곳에 게시를 해두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다면,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5. 한 번 정하면 바꾸기 어려운 것일까?
일하는 방법의 방향성을 정할 때 고민되는 점이 있었는데요. 현재 재직 중인 직원들에게 필요한 방법이어야 할지, 아니면 현재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설로인에서 일하게 될 모든 직원들에게 필요한 방법이어야 할지였습니다. ‘설로인에서 일하는 방법’을 만들 때,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 목표는 ‘우리 회사에 맞는 방법, 직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방법, 변화의 촉진제가 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보니 ‘현재 재직 중인 구성원’에게 경종을 울릴 수 있는 방법을 만드는 것으로 방향이 잡혔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방법은 회사가 성장하고, 새로운 구성원이 들어오고, 사업전략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는 ‘일하는 방법이 회사의 조직문화 방향성을 보여주는 것이고, 조직에서 함께 일하고 싶은 동료를 나타내는 것이고, 협업의 시너지로 인해 회사가 성장할 수 있는 바탕이기에 쉽게 바꾸기 어렵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맞는 말이고 저 역시 이 생각에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한 번 정하면 바꾸기 어렵다는 생각에 너무 미래지향적이거나 보편적인 내용을 담게 된다면, 도리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당장의 회사 성장과 업계 혁신을 이끌어 내기 위한 생존방법이 되지 못하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있습니다. ‘송파구에서 일을 더 잘하는 11가지 방법’도 중간중간 수정이 있었습니다. 정해진 일하는 방법을 바꾸는 것이 자연스러워도 되지 않을까요?
우리 회사만의 일하는 방법을 만드는 일은 꽤 어려운 일입니다. 설로인에서도 수개월의 시간에 걸쳐 어렵게 결실을 맺었으며, 제가 만난 다른 스타트업의 대표들도 그 어려움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어려움이 있지만 스타트업들에게 일하는 방법은 꼭 필요한 생존 방법이기에 제대로 만들고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어렵게 만든 방법들이 구성원들에게 그냥 벽에 붙어 있는 포스터가 아닌 하루의 시작에서 마음을 다 잡는 긍정의 한 줄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