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은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구성된 사람들의 집합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조직은 이루고 싶은 어떤 목적이 있어서 존재한다는 것이고, 그 목적 달성은 개인의 힘으로는 부족하기에 여러 사람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성을 고려하면, 조직의 성공은 미션, 전략, 목표 등의 목적 달성과 관련된 일의 영역과 역할, 권한, 관계 규범 등 사람들이 모였을 때 발생하는 사람 영역의 과제를 얼마나 잘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새로운 무언가를 하고자 조직을 만든 창업자들은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람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해 자기 나름의 이론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일과 사람에 대한 창업자의 가정이 조직에 효과를 가져오면 이것은 문화로 자리 잡는다. 예를 들어, ‘사용하기 쉬운 제품’이라는 전략과 ‘(편의성 향상에 대해) 직급과 상관없이 누구라도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라는 사람 간의 규칙이 조직에 성과를 가져온다면 사용 편의성, 수평적 의사소통이라는 가치는 그 조직의 문화가 된다는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창업자의 가정, 가치, 신념이 어떻게 조직문화로 뿌리 내리게 되는지 그 메커니즘을 살펴 본다.
문화 형성에 있어 창업자의 역할
조직문화 전문가인 에드거 샤인(Edgar H. Schein)은 리더가 자신의 가치, 신념을 내재화하는 방식을 주요 내재화 메커니즘과 부차적 강화 및 안정화 메커니즘으로 설명한다. 그는 주요 내재화 메커니즘이 “리더가 자신의 의식적, 무의식적 신념을 바탕으로 조직이 어떻게 인식하고,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데 사용”하는 도구라고 설명한다. 반면, 부차적 강화 및 안정화 메커니즘은 문화를 창조하고 강화하는 역할을 하나, 이것이 주요 매커니즘과 일치할 때에만 작동된다는 점에서 ‘부차적’이다.
주요 내재화 메커니즘(Primary Embedding Mechanisms)
- 리더가 정기적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측정하고, 통제하는 것
- 중요 사건 및 조직 위기에 리더가 대응하는 방식
- 리더가 자원을 할당하는 방식
- 역할 모델링, 교육 및 코칭
- 리더가 보상과 지위를 할당하는 방식
- 리더가 모집, 선발, 승진, 제명하는 방식
부차적 강화 및 안정화 메커니즘(Secondary Reinforcement and Stabilizing Mechanisms)
- 조직 설계 및 구조
- 조직 시스템 및 절차
- 조직의 의례 및 의식
- 물리적 공간, 파사드, 건물의 디자인
- 중요한 사건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 조직 철학, 신조 및 헌장에 대한 공식적인 선언문
리더가 정기적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측정하고, 통제하는 것
급성장하는 신생 조직의 리더들이 구성원의 역량 향상이 시급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종종 듣는다. 이들은 “지금까지는 우리끼리 똘똘 뭉쳐” 여기까지 왔지만 “이제부터는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안되고 잘 해야 된다”며 구성원들의 실력 향상, 역량 개발을 강하게 촉구한다. 창업자의 이런 열망이 조직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구성원 역량 향상에 관심이 높은 창업자 A, B가 있다고 상상해 보자. A는 임원들을 모아 “구성원들의 역량 개발에 신경 써 주십시오”라고 요청하고 나머지는 임원들에게 맡긴다. B는 임원들에게 “구성원들의 역량 개발에 신경 써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매주 열리는 회의에서 임원들이 구성원 역량 개발을 위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그 진척을 지속적으로 점검한다. 1년 후, 두 기업의 육성 문화를 측정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육성 문화는 어느 기업에서 뿌리내렸을까?
구성원들은 리더가 ‘챙기는’ 것을 최우선으로 추진한다. 이를 테면, 주간 회의에서 특정 과제의 진행 상황을 매주 묻거나 미진한 진행에 대해 격한 감정을 표출한다면 직원들은 그것을 최우선으로 수행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구성원들은 리더가 정기적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측정하고, 통제하는 것을 통해 리더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혹은 우선순위를 판단하고 그에 맞게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게 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아무리 리더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라도 언행을 통해 표현되지 않으면, 즉 정기적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측정하고, 통제하지 않으면 구성원들은 해당 과제의 중요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여 리더가 기대하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간혹 직책자의 권한을 존중하려는 의도에서 관심 과제의 진행을 추적하지 않는 CEO를 본다. 믿지 못하고 간섭한다는 인상을 주기 싫어 의도적으로 정기적인 측정을 하지 않는 것이다. 또 다른 CEO는 자신의 머리 속에 해야 할 일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두 번 세 번 챙길 여력이 없다고 말한다. 자신이 한 번 말하면 나머지는 임직원들이 알아서 잘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오히려 반문하기도 한다. 그러나 샤인 교수는 관심의 강도도 중요하지만 일관성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한 번 강하게 말하는 것보다 일관성있게, 지속적으로 주의를 기울이고, 보상하고, 통제하는 것이 자신의 우선순위, 목표 및 가정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중요 사건 및 조직 위기에 리더가 대응하는 방식
리더가 무엇을 위기로 인식하느냐, 위기에 어떻게 반응하는냐는 리더의 중요한 가정을 드러내고, 이것이 규범, 업무 절차 생성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타운홀미팅에서 한 구성원이 리더의 의견에 정면으로 반박하며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고 가정해 보자. 리더는 이것을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할 수도 있고, 자유로운 의사 표현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리더가 구성원의 반박을 위기로 보느냐, 위기로 인식하지 않느냐에 따라 그 조직의 문화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가질 것이다.
또 다른 예로 타이레놀 독극물 주입 사건에 대한 존슨앤존슨의 대응을 들 수 있다. 1982년 시카고에서 7명의 사람들이 타이레놀을 먹고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타이레놀 제조사인 존슨앤존슨의 CEO 제임스 버크는 미 전역에서 유통 중이던 타이레놀 3,100만 병을 전량 회수했다. 이 같은 버크의 위기 대응 방식은 ‘이윤보다 소비자의 안전이 우선’이라는 가치를 더욱 강화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위기 상황에서 보인 리더의 행동은 리더가 ‘진짜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드러내게 된다. 그리고 위기 상황이 주는 불안은 감정적 몰입을 높이기 때문에 강력한 학습 효과를 가진다. 샤인은 “위기는 불안을 고조시키며, 불안을 줄이고자 하는 욕구는 새로운 학습을 촉진”하는 강력한 동기로 작용하여, 구성원으로 하여금 위기 상황에서의 대응를 더 잘 기억하고, 배운 내용을 의례처럼 반복하는 경향이 강해진다고 설명한다.
리더가 자원을 할당하는 방식
재정과 관련된 리더의 의사결정은 그의 신념과 가정과 잘 드러낸다. 쉽게 말해서 리더가 돈을 어디에 쓰느냐, 어떻게 쓰느냐는 리더의 가치와 가정을 명확하게 전달한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가능한 한 많은 현금을 보유하는 것을 선호하는 리더들은 공격적인 투자와 사업 확대에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고, 예산과 비용을 통제하는 관리 시스템을 운영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 같이 자원 사용을 계획하고 할당되는 프로세스는 안정성, 예측 가능성을 중요시하는 문화를 조성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일선 실무자가 예산을 계획할 수 있느냐, 부서의 리더만 계획할 수 있느냐 혹은 예산 신청과 할당을 위해 몇 단계의 절차를 거쳐야 하느냐에 따라 조직의 문화는 각기 다른 양상을 보이게 될 것이다.
역할 모델링, 교육 및 코칭
리더들은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특정 가치, 행동을 교육을 통해 유도하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본인이 나서서 직원들에게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지향하는 가치를 전파하려고 한다. 한편,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업무 일상에서 보이는 리더의 태도, 말, 행동은 롤 모델로 기능하여 구성원이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해 교육하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리더가 업무의 세세한 사항까지 챙기면 구성원들은 ‘여기에서는 꼼꼼하게 일하는 것이 요구된다’고 자연스레 학습하게 된다. 리더가 구성원에게 먼저 말을 걸고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면 ‘위계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소통’하는 것이 규범이라고 인식하게 된다.
샤인 교수는 공식적인 교육이나 연설이 교육의 매개체가 되지만 일상 활동에서 드러나는 비공식적인 메시지가 더 강력한 교육 및 코칭 메커니즘이라고 강조한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고객을 섬겨야 한다’라고 연설하는 것보다 일상 생활에서 리더가 고객 요구에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구성원의 행동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보상과 지위를 할당하는 방식
무엇이 높은 성과로 평가받느냐, 누가 승진되느냐, 반대로 무엇이 처벌받느냐는 리더가 진짜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전달하는 분명한 메시지로 작용한다. 만약 제도와 실제로 보상을 받는 것 간에 차이가 있다면, 구성원들은 초반에는 혼란을 느낄지 몰라도 결국 실제 받는 보상을 근거로 그것이 조직에서 중요하게 고려하는 기준이라고 결론 내리게 된다. “말로는 AA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실제로 여기에서 중요한 건 BB이다”라고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리더는 자신에 내재화하고자 하는 가치에 부합하는 보상, 지위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협력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개인 업적에 기반하여 평가한느 것과 같이 상호 모순적인 가치와 시스템을 운영한다면 구성원들은 조직의 추구 가치에 혼란을 느끼고 오히려 조직에 반발하게 될 것이다.
리더가 모집, 선발, 승진, 제명하는 방식
창업자는 자신과 비슷한 가치를 소유한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끼고 그들을 채용하곤 한다. 창업자의 가치와 부합하는 인재는 조직에 빠르게 적응하고 동료들과 의기투합하기 쉽다. 이처럼 채용은 리더의 가치를 확산하고 강화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자신의 가정, 신념, 가치와 비슷한 사람을 선택하는 것은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일어나지만 의도적으로 이를 설계하고 실행하는 리더도 있다. 미국 온라인 의류, 신발 소매업체 자포스의 창업자인 토니 셰이((Tony Hsieh)는 조직문화 보호를 위해 퇴직 장려금 제도를 도입하였다. 자포스는 신입 사원이 4주간 교육 후 조직과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퇴사를 선택할 수 있도록 4,000달러의 퇴직 장려금을 제공한다. 현실적인 문제로 조직에 눌러 앉는 사람이 없도록 두둑한 퇴직 장려금으로 퇴사를 유도하는 것이다. 셰이는 조직에 부합하지 않은 사람이 조직에 남아 문화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을 방지하고자 이 같은 제도를 도입하였다고 밝혔다.
경영자의 역할
창업자와 경영자는 자신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자신이 조직의 문화를 만들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자신이 보인 태도, 말, 행동이 ‘여기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신호로 작동하고, 직원들은 그 신호가 알리는 대로 행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리더는 조직이 지향하는 가치를 일관되게 강조하고, 가치와 시스템 간의 일치성을 높임으로써 이를 내재화할 수 있다. 협력을 강조하면서 경쟁을 부추기는 발언을 하거나 협력을 저해하는 시스템을 운영한다면 직원들에게 상충되는 메시지를 전달하여 혼란을 야기하고 불만을 고조시킬 것이다.
조직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만큼 이것을 위배했을 때 시정 조치 및 처벌 등 그에 맞는 대응을 취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위배에 대한 무대응은 위배 자체를 강화하거나 해당 가치가 실제로는 중요하지 않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서는 조직문화를 진단하는 방법을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