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직장인과 조직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말도 안되는거 들이미는 CEO 대응방법은 안쓰시나요?”라는 요청을 받았다. 웃어 넘기려 했던 이 요청은 뜻밖의 제보를 시작으로 HR 블레틴의 독자들의 의견을 모아 기사화하게 되었다. 조사에서는 ‘CEO의 말도 안되는 요청’에 대해 물었지만, CEO를 상사로 대체해도 결과를 이해하고 적용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우선 직장인들은 언제 CEO 혹은 상사의 요구 사항이 말도 안된다고 생각할까? 대부분은 현실적으로 실행하기 어려운 “이상적”인 것을 요구할 때를 꼽았다. 지금 당장 실행할 수 없거나, 조직의 내부 역량을 고려하지 않은 채 내리는 요구 사항을 말한다. 비슷하게는 제약을 고려하지 않은 요청사항도 많이 보였다. 기존 업무는 조정되지 않은 채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기거나, 직무와 관련없는 일을 지시하고, 데드라인을 너무 촉박하게 주는 것을 예로 들었다.

그 다음으로 많이 나온 의견은 “기준에 반하는” 지시이다. 요구사항이 법, 규정을 위반하거나, 기존에 정해 놓은 기준을 어기는 내용일 때 “말도 안되는” 요구 사항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 외에는 “과거의 성공 공식을 표준이라고 생각”하거나 “요즘 트렌드와 맞지 않은 지침” 등 과거의 죽은 방식을 요구하는 상황을 꼽았으며, “항상”, “일상적”이라는 슬픈 응답도 보였다.

그렇다면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상사의 요청에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말도 안되지만 결국 “따른다”는 것이다. 다만 얼마나 빨리 따르느냐, 따르기 전에 다른 시도를 해보느냐는 저마다 달랐다.

부처형
별다른 반대없이 상사의 요구 사항에 따르는 유형이다. 이들은 반대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상사의 요구 사항에 그냥 따른다고 답변하였다.

소크라테스형
상사의 ‘말도 안되는’ 요구 사항이 있을 때 짧은 침묵과 질문을 활용하여 그로 하여금 깨우침을 주는 유형이다. 이를 테면, 상사와 대화할 때 몇 초의 텀을 두고 대답하여 “실행하는 데에 문제가 있는걸까?”라고 의문을 갖게 하고, 그의 생각에 질문을 던져, 그가 답변하는 동안 무리한 요구였음을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다. 표정을 더하는 디테일은 플러스 알파이다.

일보후퇴형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형이다. 이들은 요구 사항이 있는 자리에서는 일단 “알았다”고 대응한 후, 동료와 연합군을 구축해서 반대 의견을 피력하거나, 데이터나 직원 반응을 정리하여 안되는 이유를 설득한다. 혹은 요구 사항이 있은 지 하루나 이틀 후에 실행하기 어려운 이유를 이야기하여 요구 사항을 조정한다고 말했다.

분석형
분석형은 CEO의 캐릭터 파악에서 시작한다. CEO의 유형과 상황이 파악되면, 해당 유형에 효과적인 방법을 선택하여 대응한다. 주의해야 할 것은 이 방식은 CEO와 어느 정도 신뢰 관계가 형성되어 있을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공감형
CEO의 요구를 ‘말도 안된다’고 치부하는 대신 그의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이해하기 위해 경청하고, 공감하는 유형이다. 일단 CEO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한 것인지 확인한 후, 해당 지시를 한 이유를 물어보고,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다. 실제로 한 독자는 CEO와 공감적 대화를 했던 경험을 공유해 주었다.

  코칭기법을 적용하여 대표님께서 정말로 교육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과 직원들에게 기대하고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본인이 직원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추어졌으면 좋겠는지에 대해 질문하고 대화를 나누었던 적이 있었어요. 그 때 대표님께서  “지금까지 그런 질문을 나에게 한 사람이 없었다”라고 하시며 굉장히 이례적인 모습을 보이셨어요. (중략) 대표님도 일반 직원과 동일하게 칭찬받고, 지지받고, 신뢰할수록 더 좋은 경영자가 되는 것 같아요.

한 CEO는 “창업을 하고 나니, 예전에 직장 상사가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그 때는 수시로 바뀌는 지침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어느덧 그와 비슷한 위치가 되어 보니 직원들에게 “충분히 배경을 설명하고 지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급하니까 이런 저런 설명없이 지시만 내리게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상사, 직원 모두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과 동시에 이해시키려는 노력 또한 필요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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